넷플릭스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 원작 웹툰 작가 천계영 / 종양 제거 수술에 손가락 퇴행성 관절염 / 애플 맥 음성 인식 프로그램으로 돌파구 / ‘좋아하면 울리는’ 원작 웹툰 시즌 8 준비 / 작업 과정 매주 1시간 유튜브로 생중계 / 8월달 공개 드라마 원작 못지않게 인기 / “작가에겐 독자를 실망시킬 권리 있어요”

만화의 외길을 걸어왔는데 손가락을 더 이상 자유자재로 쓸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 체념할지 모를 일이다.

‘언플러그드 보이’, ‘오디션’으로 유명한 24년차 중견 만화가 천계영(49·여)은 달랐다. 지난해 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손가락의 퇴행성 관절염이 심해진 그는 시행착오 끝에 돌파구를 찾았다. 애플 맥의 ‘손쉬운 사용’이란 음성 인식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넷플릭스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의 원작인 동명 웹툰의 시즌 8은 그렇게 준비 중이다.

지난 10일 서울 중구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명령어 여러 개를 묶어 스크립트를 짜는 법을 조금 더 공부하면 손으로 하는 것보다 빠를 수 있겠더라”며 “컴퓨터 운영체제(OS)의 미래를 본 것 같다”고 했다. 1996년 데뷔한 그는 웹툰의 시대가 오기 전 이미 컴퓨터를 이용해 작업한 선도자다.

넷플릭스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의 주인공 황선오와 김조조의 모습. 이들 역할을 맡은 배우 송강과 김소현은 천계영의 원작 웹툰 속 캐릭터들(오른쪽 사진)과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 준다. 넷플릭스 제공 ⓒKyeYoungChon

“3D 프로그램은 쓴 지 20년 가까이 됐어요. (3D 모델링 프로그램) 스케치업이 나왔을 때부터 썼거든요. 새로운 것, 효율성을 좋아해요. 작업 흐름을 어디서 더 줄일 수 있을지 항상 생각하죠. 복사해 붙이는 단축키 Ctrl+C, Ctrl+V는 ‘복사해줘 붙여줘’, ‘복사 붙여’라고 해요. ‘각 행을 전부 복사해 붙여’라 해도 그렇게 돼요. 말로 하다 보니 그 단계를 더 줄이게 되고 일하는 과정이 직관적으로 됩니다. 단축키를 외울 필요가 없어지는 거죠. 아, 이러다 영화 ‘그녀’처럼 (OS와) 사랑에 빠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그는 이 같은 작업 과정을 지난 7월부터 매주 목요일 1시간 동안 유튜브로 실시간 중계하고 있다. 이 작업실 라이브는 다음 달 10일 마무리하고 24시간 말 없는 라이브를 이어간다. 작업 과정을 더 잘 보여 주려는 차원이다.

작업 방식뿐 아니라 작품 소재도 시대를 앞서간다. 음악 천재들의 오디션 과정을 그린 ‘오디션’은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 등장하기 전인 1997년 첫선을 보였다. ‘좋아하면 울리는’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m 안에 오면 알람이 울리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사랑이 확인되는 세상을 그린다. 지난달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는 원작 못지않게 사랑을 받고 있다.

“독자들 반응이 좋아 기뻐요. 제작 과정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디지털 대 아날로그란 프레임, 기계는 사랑을 알 수 없다는 식의 결론, 기계문명에 대한 어떤 판단은 원작 주제와 다르니 그런 세계관을 고려해 주면 좋겠다곤 했죠.”

넷플릭스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의 원작 웹툰 다음 시즌을 준비 중인 만화가 천계영은 “목소리로 그림을 그리는 게 손으로 하는 것보다 빠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새로운 것, 효율성을 좋아한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 제공

‘뉴턴의 사과 법칙’이 그만의 아이디어 발상법 중 하나다. 그는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만유인력 법칙을 깨달았다는 일화가 있지만 우연히 어떤 걸 발견하진 않는다”며 “뉴턴은 맨날 중력을 생각했기에 그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생각할 목록을 최대한 짧게 갖고 밖에 나가 계속 생각하며 가 보지 않은 길을 걷다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철칙은 “작가에겐 독자를 실망시킬 권리가 있다”는 것.

“너무 안 되니까 그렇게라도 마음을 다잡았던 거지, 사실 독자가 가장 무섭죠. (학창 시절) 수열을 좋아했어요. 앞을 보면 패턴이 보이잖아요. 수열처럼 과거를 보면 미래를 알 수 있는데 독자들에게 맞추다 보면 오히려 잘 맞춰지지 않아요. 지금도 대중의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대중이 어떤 걸 좋아하겠거니 하고 뭘 하는 것처럼 위험한 게 없습니다. 진부한 게 나올 확률이 높죠. 옛날엔 (연재만화) 한 회 순위가 떨어지면 출판사에서 바로 알려 줬어요. ‘계영씨라면 좀 더 잘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라면서요. 최선을 다했는데 제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그에 못 미치면 비난하는 걸 보면서 독자들에게 맞춰 가려 하면 사람 자체가 망가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유료화된 웹툰 시장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블록버스터가 나오면서 중간 규모의 한국영화가 없어진다 하잖아요. 만화도 소위 돈 되는 산업이 되면서 그렇게 될까 우려돼요. 웹툰 초창기엔 무료였고 문턱이 낮아 그림을 좀 못 그려도 신선한 작품이 많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졸라맨’처럼 그려도 재밌는 작품을 보고 싶어요. 그런 분들이 활동할 수 있는 채널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작가가 있을지 찾아보고 있어요.”

그는 “지난해 수술하고 인생이 생각보다 짧다는 걸 느꼈다”며 “예전엔 ‘나중에 좋은 일도 해야지’ 했는데 요샌 가까운 사람부터 돕고 뭐든지 생각나는 대로 빨리빨리 하려 한다”고 말했다. 만화가에겐 상상력보다 실행력이 중요하다는 그의 지론과 맞닿아 있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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